[人터뷰] “손 내미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 배려”-이코노믹매거진

SIDFF 0 43 09.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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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매거진= 현정석 기자] 레이첼 곽. 그는 무대연출자며 음악 프로듀서이고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며 버클리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돌아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백석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사람이다. 언뜻 봐도 화려한 이미지에 화려한 배경을 가졌다.

그가 지난 달 30일에 폐막한 제 6회 속초 국제 장애인 영화제의 총연출을 맡았다. 그를 통해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지닌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영화제를 축하해주기 위해 속초로 모였다. 이들 뿐 아니라 재능기부를 통해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모였다.

아직은 초창기 행사기 때문에 많은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행사라 많이 힘들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일까. 곽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의 총연출을 맡게 됐다. 힘들지 않았나?

레이첼 곽 (이하 곽) : 총연출을 하게 되면 예산을 짜야 하는데 예산이 너무 적었다. 사실 5회 때 예산이 줄었지만 힘들어도 6회를 가보자고 다들 결정했었다. 거기에는 속초시 관계자가 했던 4000만원의 지원금 얘기가 뒷받침됐었다. 다들 지자체의 예산 시스템을 잘 몰라 그런 줄만 알고 일을 벌렸다. 그런데 실제로는 시 지원금 450만원이 다였다. 그래서 무대에 설만한 주변 지인들과 제자들에게 부탁했다. 출연료가 너무 적지만 도와달라고. 한 사람은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내게 조금 더 챙겨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얼마 안 되지만 조금 더 챙겨줬다. 솔직한 그 마음 씀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사실 예산도 행사에 비해 부족한 1억6000만원으로 시작했다. 외부에서 온 연출가는 2억5000만원은 들었을 텐데라며 놀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5200만원이 빚으로 남았다. 다들 빚을 내서 빛을 내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 돈을 어디서 메꿔야 할 지 나 외에 다른 사람들도 걱정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나는 왠지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5200만원이 내겐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오병이어(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했다는 성경구절)로 들렸다. 의지가 있으면 뜻이 모이는 게 맞다. 어떻게 알았는지 출연진 중 한 분은 출연료를 돌려주면서 자신도 기부하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또 숨어 있던 인연, 예전에 알던 인연들이 계속 나와 도와주고 있다. 너무나도 감사하다.

-. 장애인 인식 개선이 목적이라는데 그쪽에 관심이 있었나?

곽 : 일이 있어 미국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서는 수술하면 오히려 더 안 좋을 수 있다고 자연치유를 권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결론부터 말하면 육체의 고통 때문에 힘들긴 했어도 주변의 시선이나 시설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버스를 타면 남편이랑 같이 있는데도 기사가 직접 휠체어에 안전벨트까지 채워줬다. 식당에 가면 스탭 여럿이 움직여 의자를 치워주는 등 동선을 만들어주고 자리를 잡아줬다. 어딜 가서도 우선 배정을 해줘 줄서기도 해본 적 없을 정도였다. 차들도 내가 신호등에 있으면 다 같이 멈춰서주고 내가 건너기를 기다려줬다. 그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을 여기서 풀어내고 싶었다. 어른들과 몸이 같지 않은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차별이나 봉사가 아니라 배려인 것처럼 그들도 약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배려하는 게 맞지 않는가.

-. 행사를 진행하며 많은 난관에 부딪혔겠다.

곽 : 장애인 행사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주변 시설도 장애인들이 다니기 쉽게 확충해야 하고 쉽지 않다. 주위의 편견도 사실 크다. 처음엔 공무원분들이나 의원분들이 거의 안 오실 듯 했었지만 다행히도 많이 와주셨다. 그분들에게는 자리를 참석해 빛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이득이 아닌 이런 지역 영화제에 재정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출연자분들이나 스탭분들, 자원봉사자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됐다. 다들 힘들어도 이해해주고 대회를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노력해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 행사의 특징이 있다면.

곽 : 장애인들만의 행사보다는 나누지 말고 같이 해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비장애인을 넘어서야 한다. 그냥 같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배려가 필요하다. 장애인석이 양쪽 끝에 자리 잡아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잘 보이지도 않고 통로와 가까운 자리라 불편하다. 그래서 일단 장애인석부터 확보했다. 무대에 올라올 때도 뒤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앞쪽에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장애인분들이 오면 의전을 붙여서 도왔다. 일부에서는 의전이 역차별이라고 말이 나올 것이라고 했지만 차별과 배려는 분명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영화제의 주목적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 인식 개선이 절실한 것 같다.

곽 : 한국은 아직 휠체어가 편하게 다닐만한 길이 적다. 우리 행사장만 해도 처음엔 휠체어가 지나기 힘들 정도로 길목이 좁았다. 다들 걸어다니다 보니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기준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나 시설이 아니다. 그런 건 차츰 만들어나가면 된다. 먼저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의식이다. 귀찮고 불편하고 무섭기까지 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우리 주변 사람 중 하나다. 폐막식 때 그래서 장애인 비장애인 안 가리고 자원봉사자나 스탭들 영화 관계자들 모두 나와서 무대에 같이 섰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날 참여했던 장애자분들이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안아주는데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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